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자르 왕조 (문단 편집) == 상징 == ||||||<#19B619> {{{#ffffff '''카자르 왕조 국기'''}}} || || [[파일:카자르 왕조 국기.svg|width=100%]] || [[파일:Early_20th_Century_Qajar_Flag.svg.png|width=100%]] || [[파일:1200px-State_flag_of_Persia_(1907–1933).svg.png|width=100%]] || ||<#19B619> {{{#ffffff '''1848 ~ 1852'''}}} ||<#19B619> {{{#ffffff '''1852 ~ 1907'''}}} ||<#19B619> {{{#ffffff '''1907 ~ 1925'''}}} || 혼란스러웠던 왕조답게 국기도 매우 여러 차례 바뀌었다. 카자르 왕조는 나스레딘 샤 시기 근대화 개혁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공식적인 국기가 없었고, 대신 샤들의 개인용 깃발을 사용했다. 카자르 왕조가 당시 썼던 국기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가 남아있는 게 없어서 서양의 우표나 삽화에 의존해서 당시 깃발의 모습을 추정만 하는 수준이다. 초대 샤인 [[아가 모하마드 칸]]은 붉은 바탕에 노란 원, 그 원에 칼을 든 사자와 태양이 그려진 깃발을 썼다고 한다. [[파트 알리 샤 카자르|파트 알리 샤]]는 3가지의 깃발을 사용했다. 전쟁 시에는 붉은 바탕에 사자와 태양이 그려진 깃발을, 외교 시에는 하얀 바탕에 사자와 태양이 그려진 깃발을, 평시에는 녹색 바탕에 사자와 태양이 그려진 깃발을 썼다. [[나스레딘 샤 카자르|나스레딘 샤]]가 근대화를 시작하면서 대재상 아미르 카비르는 위의 첫 번째 깃발을 공식적인 깃발로 채택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아미르 카비르가 실각하며 4년 정도 밖에 못썼고, 이후 1852년부터 1907년까지는 두 번째의 하얀 바탕에 녹색 테두리가 그려진 깃발을 따로 썼다. 하지만 카자르 왕조 내에서 이 국기만을 썼던 것은 아니었다. 카자르 왕조는 다양한 종류의 깃발을 차용해서 사용했고 종종 [[이스파한]]이나 [[쉬라즈]]의 요새에는 [[테헤란]]과 전혀 다른 종류의 깃발을 게양하기도 할 정도였다. 국기에 큰 상징성을 부여하지 않았던 페르시아의 특성이었다. 모든 깃발의 비율은 가로:세로가 4:3이었다. 이렇게 피아를 구분하고 영토를 표시할 정도로의 목적으로만 쓰던 국기는 1906년 입헌 혁명이 일어나면서 크게 바뀐다. 1907년 10월 채택된 헌법에 카자르 왕조의 공식적인 국기를 '녹색, 흰색, 붉은색의 바탕과 중앙에 사자와 태양이 그려진 삼색기'로 정의내렸다. 국기의 색이나 사자와 태양의 비율도 정해지지 않았던 이전과는 달리 1910년 9월 4일자 법령에는 사자의 꼬리 모양, 사자가 들고 있는 검의 위치 등 국기의 세부 사항도 정확하게 명시해놓았다. 이로써 전국적에서 모두 통일된 국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군기와 상선기는 색과 비율은 똑같지만 국기에서 사자와 태양만 뺀 모습이었다. 딱 보면 알겠지만 붉은색이 핑크색으로 보일 정도로 색깔이 매우 옅어진 게 특징이다. 이 깃발은 1925년 카자르 왕조가 망하고 [[팔라비 왕조]]가 들어선 이후에도 8년이나 더 쓰였다. 그러다가 1933년에 색을 더 짙게 만들고 팔라비 왕조의 왕관을 넣고 비율을 4:7로 재조정하면서 이 국기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B619> {{{#ffffff '''카자르 왕조 국장과 왕관'''}}} || || [[파일:카자르 왕조 국장.svg|width=100%]] || [[파일:Kiani_Crown_of_Imperial_Iran_(heraldry).svg.png|width=100%]] || [[파일:c41ebf4f8fad37670991fd216a71f059.jpg|width=70%]] || ||<#19B619> {{{#ffffff '''국장'''}}} ||<#19B619> {{{#ffffff '''국장 속 왕관'''}}} ||<#19B619> {{{#ffffff '''키아니 왕관'''}}} || 카자르 왕조의 국장 모티브 자체는 이미 [[사파비 왕조]]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이었다. '사자와 태양'은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상징이나 다름없었는데, 각각 사회의 두 기둥인 국가와 [[이슬람교]]를 상징했다. 사파비 왕조 시대에도 가장 대표적인 왕실 문양들 중 하나였지만 공식적인 국장으로 자리잡은건 카자르 왕조 시대 들어서부터였다. 파트 알리 샤는 국장에 카자르의 공식적인 황관인 '키아니 왕관'을 추가했다. 이후 페르시아 궁정을 방문하는 유럽인들을 이 사자와 태양 문장 속에 무언가 고대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심오한 뜻이 있는게 아닐까 착각했고, 이후 유럽에 페르시아의 상징으로 널리 퍼지며 페르시아 민족주의의 상징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국장 속에 그려진 왕관은 카자르 왕조의 군주들이 [[대관식]]이나 공식적인 행사 때 착용했던 '키아니 왕관'이다. 왕관 자체는 카자르의 초대 샤 [[아가 모하마드 칸]]이 스스로를 옛 [[사산 왕조]]의 샤한샤들과 전설적인 '카야니 왕조'[* 페르시아 구전 설화에서나 전해지는 고대 페르시아의 전설상의 왕조. 페르시아의 민족 기반을 확립한 전설집 [[샤나메]]에 등장하는 왕조이기도 하다.]와의 연관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들었다. 왕관은 붉은 벨벳으로 만들어졌고 그 위에 수 천개의 보석들이 세팅됐다. 무려 '''1,800여 개'''의 작은 [[진주]]들이 붙어있는데 그 직경이 커봤자 7mm도 되지 못할 정도로 세밀하다고. 약 300개의 [[에메랄드]]와 1,800여 개의 [[루비]]로 장식되었으며 높이 32cm, 너비 19.5cm로 현재 [[테헤란]]의 수장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